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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스크랩] 시험 잘 보는 방법

by _><- 2016.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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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경제학과 이준구교수님의 글>


지난 며칠 동안 재정학 학기말 시험 채점을 하면서 답안지를 하나하나 넘길 때마다 놀라

움이 더욱 더 커짐을 느꼈다. 내가 보기에는 학생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한 것 같았는

데, 어찌 하여 답들이 하나같이 핵심을 비켜가고 있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50점을

넘는 사람이 불과 몇 되지 않고, 0점에 가까운 사람이 그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나마 틀린

답에 몇 점씩의 동정 점수를 주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0점을 받았을 사람들이 최

소한 20% 정도는 되어 보였다.

내 시험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내가 특히 까다롭게 채점을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꽤 많

다. 이와 같은 인식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학생들이 스스로 반성할

점은 없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에게로 모든 핑계를 돌리면 심리적 안정감은

찾을 수 있을지 몰라도 발전의 계기는 영영 찾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까다

롭다고 불평을 하기 전에 아무리 까다로운 기준이라도 능히 통과할 수 있는 실력을 키워 놓

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중간시험을 끝나고 여러 번 강조한 바 있지만, 우리 학생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핵심

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주관식 시험에서는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

하고 있는지의 여부가 채점의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 아무리 현란한 문체로 아무리 많은 지

식을 과시해도 핵심을 비껴가면 결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그 동안의 경험에 따르면,

학생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지식을 과시하는 데 주력하면 형편없는 답안이 되는데, 그 점을 모르고 있

는 것 같다는 말이다.

학생들이 이런 현명치 못한 태도를 갖게 된 것은 단순 암기식 교육의 폐해 때문인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학생들의 전형적인 학습 방식은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단순히 암기

할 뿐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지는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에서 무엇

을 묻든 자신이 암기한 것을 앵무새처럼 써넣을 수밖에 없는 비극이 발생하는 것이다. 생각

이란 해보지도 내지 않고 그저 암기에만 골몰하는 나쁜 학습 방식이 우리 학생들을 망치고

있다.

이번 학기의 재정학 학기말 시험에서 예를 하나 들어 학생들이 얼마나 맹목적인 학습 방

식에 매달리고 있는지 설명해 보기로 하겠다. 5번 문제는 “조세의 자본화라는 개념을 사용

하여 종합부동산세의 부담이 누구에게 귀착될 것인지를 예측해 보라.”는 것이었다. 조세의

자본화라는 것은 공급이 고정되어 있는 내구성 자산에 조세를 부과하면 그것이 가격이 떨어

져 결국 현재의 자산 보유자에게 그 부담이 전적으로 귀착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이 문제

는 조세의 자본화 그 자체에 대한 설명을 하라는 것이 분명 아니다. 현실에서 종합부동산세

를 부과한 경우에도 그와 같은 자본화가 일어날 것인지의 여부를 논의해 보라는 문제다.

그런데도 150명이 넘는 수강생 중 2/3가 넘는 사람이 조세의 자본화 그 자체만을 설명하

는 것으로 그쳤다. 즉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본 자본화의 도출과정을 설명하고 이

자본화 때문에 현재의 부동산 보유자에게 종합부동산세의 부담이 전적으로 귀착된다고 결론

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정답을 써냈다고 의기양양해 있을 테지만, 내

가 보기에는 0점밖에 얻을 수 없는 오답을 써낸 데 불과하다. 이런 문제라면 조세의 자본화

라는 개념 그 자체에 관해서는 간략한 소개로 그쳐야 좋은 답안을 만들 수 있다.

조세의 자본화라는 것은 모든 이상적인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예측할 수 있는 이론적인

결과일 뿐 현실에서 자본화가 실제로 일어나리라는 보장이 없다. 내가 묻고 있는 것은 현실

에서 과연 종합부동산세의 자본화가 일어날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

이었다. 다시 말해 종합부동산세의 부과가 실제로 부동산 가격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이다. 만약 현재 이 자본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고 있는지 설득력 있는 해설이 뒤따라야 한다. 물론 이것은 교과서에서 설명되지 않았고

스스로 생각해 보고 답을 써야 하는 부분이다.

나를 실망시킨 것은 이런 방향으로 답을 내려고 시도한 사람이 10명도 채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정답을 찾아내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올바른 방향으로 답을 내려고 시도한 사람은

많아야 할 것이 아닌가? 내 출제의도와 어긋나게 조세의 자본화에 대한 설명으로 시종하면

왜 그것이 오답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가? 내가 채점을 하면서 줄곧 탄식을

금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내 보기에 이번 재정학 강의를 들은 150명 이

상의 학생 중 제대로 답안을 작성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1/3도 채 되지 않는 것 같

았다.

즐겁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시험의 난관을 뚫고 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지금 내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도 곧 고시니 취업시험이니 하는 시험의 난관을

뚫어야 할 처지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일관한다면 어떤 시험이든 원

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유독 내가 까다롭게 군다고 생각

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른 분야라면 모를까, 논점을 벗어나 일반론으로 일

관하고 있는 답안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경제학자는 아무도 없다. (특히 요즈음 고시나 취업

시험을 채점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연배가 더 어리기 때문에 그런 점에 대해 훨씬 더 까다로

울 수 있다.)

이번 학기 재정학 중간시험을 치른 후 채점 결과에 이의가 있는 사람은 찾아오라고 했더니 

정말로 구름같이 많은 학생들이 내 연구실을 찾았다. 그런데 그들 중 대부분의 학생은

자기가 왜 감점을 당했는지조차 잘 모르고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 논점을 벗어난 답안을 썼

으면 스스로 그것이 오답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말이다. 

행정고시 같은 시험에서 자신은 그런대로 괜찮은 답을 썼는데 점수는 형편없이 나온 경험을 

고 있는 학생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기대와 실제 점수가 크게 다른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두서없이 말한 것을 다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은 한 가지로 귀착된다. 

어떤 문제가 나오면 논의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답안을 작성하라는 것

이다. 단언컨대 이것 말고 다른 더 중요한 요령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좋은 답을 쓰기 위

해서는 암기한 것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상상력을 동원해 이론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노력

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자신의 지식을 뽐내려는 듯한 답안은 채점자의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점에도 유의해

야 한다. 논의의 핵심과 별 관련이 없는데도 아는 것을 모두 쏟아내려는 태도로 이것저것

중언부언한 답안은 오히려 감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예컨대 별 관련도 없는 그림, 별 의

미도 없는 수식을 쏟아놓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 그림이나 수식에 아무런 잘못이 없을 확률

은 매우 낮다. 설사 아무런 잘못이 없다 해도 논의의 핵심과 관련이 없으면 전혀 가산점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잘못이 눈에 띌 경우 감점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경제학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무식한 그림과 수식이며, 이런 것들은 한눈에 바로 알아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 강조하고 싶은 점은 제발 글씨를 깨끗하게 쓰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늘 얘기하는 것이지만, 한석봉 같은 달필을 요구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비록 서툰 필체라

하더라도 깨끗하게 쓰면 되는 것이니, 그렇게 되도록 연습을 하라는 말이다. 최소한 채점자

가 답안을 읽으면서 짜증을 느끼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 동안 나는 수업시간에 이

말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 학생들은 무슨 ‘우국지사’라도 되는 양 자

신의 지저분한 글씨체를 버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 없는 고집은 스스로에게 불행

을 불러올 뿐인데 말이다. 내 잔소리가 듣기 싫을 테지만, 내가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한 고

언임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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